오래된 공간이 갖는 힘
6기 김예빈
스페인 발렌시아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여행지 중 유럽을 빼놓을 수 없죠. 특히 과거 건축양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명 도시들의 구시가지는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진정한 핫플레이스인데요, 저는 한국에서 살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우리나라 도시에서는 과거 건축양식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에요. 오히려 낡은 건물을 때려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모습을 훨씬 자주 보고는 하죠. 이런 행동은 어마어마한 양의
건축 폐기물을 발생시킬 뿐 아니라 뭐든지 낡은 건 버려야 하고 새로운 것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우리 삶을 지속 불가능한 방향으로
이끄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일상 속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공사현장[1]
서울의 아파트 숲[2]
다행인 점은 요새 환경에 대한 관심이 한층 고조되면서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는 건데요, 업사이클링은 오래된 물건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업사이클링 붐은 비단 물건뿐 아니라 공간에도 적용되어 ‘공간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어요. 사실 건축분야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재생건축’이라는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3] 과거 공장으로 사용되었다가 버려진 공간을 힙한 카페로 개조하거나 공원으로 탈바꿈 시키는 사례 등이 공간 업사이클링의 예시에 해당하죠. 오늘은 이러한 공간 업사이클링 사례 두 가지를 살펴보고 이러한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함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목욕탕을 업사이클링한 선글라스 쇼룸
첫 번째 사례는 요즘 인기 많은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 몬스터’의 쇼룸인데요, 2015년 젠틀몬스터는 ‘Bath House’라는 이름으로 네 번째 쇼룸을 종로구 계동에 오픈했습니다. 모두를 놀라게 한 점은 바로 과거 목욕탕으로 사용된 공간을 업사이클링 했다는 점인데요, 이곳은 원래 ‘중앙탕’이라는 이름의 목욕탕으로 1969년에 오픈했었다고 해요. 이후 약 50년 동안 계동 주민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가 목욕탕 문화가 시들해진 최근 쇼룸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4]
젠틀몬스터는 이 공간을 완전히 변화시키기보다는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래서 목욕탕의 낡은 타일들이 그대로 남아있을 뿐 아니라 목욕탕에 사용됐던 낡은 보일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또 목욕탕 물을 데우는 원리에서 착안해 전구에 불을 밝히는 전시품도 매장 중앙에 전시하고 있어요.[5] 덕분에 이 쇼룸은 과거 계동 주민들의 추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방문객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어요. 이렇게 스토리를 간직한 공간은 자연스레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 같습니다.
문화예술복합공간 ‘부천아트벙커 B39’
두 번째 사례는 바로 ‘부천아트벙커 B39’입니다. 이곳은 원래 부천시 쓰레기 소각장으로 1995년부터 가동되어 하루 200t의 쓰레기를 처리하던 시설이었어요. 그러나 소각장에서 나는 악취와 기준치 20배가 넘는 다이옥신 배출 등의 문제로 2010년에 가동이 중단되었다고 해요. 이후 부천시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이곳을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기 위해 펀드를 조성했고, 4년간의 민관협력 프로세스를 통해 지금의 복합문화공간이 탄생했다고 해요.[6]
과거 소각장의 모습을 보존한 공간
부천아트벙커 역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는데요, 전반적으로 쾌적하고 모던한 느낌의
건축물로 개보수 되었지만 기존 소각장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공간도 있습니다. 특히 건물의 3-5층은 기존 시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사전 신청을 하면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둘러볼 수 있다고 해요. 이 장소의 묘한 분위기 때문에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라고 합니다. 한편
문화예술공간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공연과 전시, 학습 프로그램
등을 열 뿐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작업할 수 있는 스튜디오도 저렴한 가격에 대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부천아트벙커의
경우 과거 혐오시설로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킨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문화예술을 즐기는 동시에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돌이켜볼 수 있는
유의미한 공간으로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기존의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건물들도 개보수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례들이 반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공간들이 더욱 많이 생겨나고, 또 이러한 공간들의 스토리텔링이
더욱 활발해져서 재미있는 공간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궁극적으로는 새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켜서 낡은 것을 더 오래, 그리고 더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문화가 더 큰 힘을 얻기를
기대합니다.
[1] 이혜원 (2018) [생활의 발견]
오래된 건물 철거,
이렇게 합니다 http://idb.imarket.co.kr/content/detail?contNo=100000011601&contGb=200002
[2] Angelina Gieun Lee 외국인이 본 한국의 아파트 https://villiv.co.kr/feature/3725
[3] 버려진 공간에 새로움을 더하다, ‘공간 업사이클링’ (2020) http://www.rcast.co.kr/sub02.php?BRD_ID=1598487475761
[4]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iwannabenick&logNo=22029991528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