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놀 권리를 지켜줘
7기 박주미
2020년 12월 22일 ‘서울특별시 아동의 놀이권 보장을 위한 조례’가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이제 전국에서 13개 광역시도가 아동 놀 권리 관련 조례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관련 조례가 제정된 광역시도에 거주하는 아동 복지법 상의 ‘아동,’ 즉 만 18세 미만의 사람의 ‘놀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조례에서 눈에 띄는 내용 중 하나는 바로 ‘어린이 놀이시설 및 놀이공간 확보’입니다. 많은 분들께 놀이터에서 보낸 유년기의 추억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 과거 흔한 풍경이던 놀이터가 이제 조례를 통해 보호되어야 할 정도로 우리 곁에서 사라지게 된 걸까요?
- 왜 그 놀이터는 사라졌을까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 모든 아동은 충분히 쉬고 놀 수 있고, 문화와 예술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협약의 일반논평에 “세계
여러 곳의 많은 어린이들이 공식적인 학업 성공에 중점을 두어 제31조에 따른 권리를 거부당하고 있다”는 의견이 실리는 등, 아동의 놀 권리가 학업에 의해 후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i]
일례로,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2019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등학생 중
44.2%가 평일 평균 2시간미만의 여가활동을 한다고 답했습니다.[ii] 또한
2019년 서울특별시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 서울에 사는 18세 미만 아동이 친구와 자유롭게 노는 시간은 1주일에 평균 6시간22분으로 일 평균 약 55분에
불과했습니다.[iii]
더 나아가 놀이터는 여가생활의 주 공간으로 간주되지 않고 있습니다. 2017년 국내 유아
및 아동의 놀이내용 및 놀이공간 연구에서 심층 면접을 실시한 결과, 72.7%가 ‘집’을 주 놀이공간이라고 답했습니다.
‘놀이터와 공원’은 이에 크게 뒤쳐지는 18.9%를
차지했습니다.[iv]
그렇다면 놀이터가 외면 받는 이유가 단순히 아동들의 생활 트렌드 변화 때문일까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격언이 현재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동이 놀이터에서
멀어지게 된 이유는 실제로 놀이터의 접근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며, 이 배후에는 어른의 사정이 있습니다. 2003년부터 대한민국 정부는 구축 아파트의 주차공간 확보를 위해 놀이터를 줄이고 주차장을 넓히는 것을 허가했습니다. 또한 과거 50세대마다 놀이터를 지어야 했던 의무 규정이 2013년 150세대로 바뀌어 150세대
미만 아파트는 놀이터를 짓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v]
놀이터 소음 문제로 인한 주민 간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이용 시간을 ‘일몰 이전’ 등으로 규제하는 놀이터도 등장하고 있습니다.[vi]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1.7은 2030년까지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 안전하고 포용적이며 접근이 용이한 공공시설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보장할 것을 명시합니다. 아동이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없다면 과연 지속 가능한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남습니다.
- 잘 노는 아동이 더 건강하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3번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모든
연령층을 위한 건강한 삶 보장과 복지 증진을 추구합니다. 놀이터는 아이들의 건강에 다방면으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첫째, 체육 활동을 통해 신체 건강을 증진시킵니다. 한 북미의 연구에 따르면, 거주지 1km 이내에 놀이터가 존재하는 아동의 경우 그렇지 않은 아동에 비해 정상 체중 범위의 BMI를 가질 확률이 5배 더 높았습니다.[vii] 둘째, 아동의 정신 건강과 정서 안정에 도움을 줍니다. 한 학교의 실험설계
연구에 따르면 놀이의 경험은 아이들의 학습태도, 집중력과 같은 인지적 요소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습니다.[viii] 마지막으로
여러 아동 간의 상호교류를 통해 아동의 사회적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놀이터에서 아동은 또래와
협력하고 놀이를 통해 규칙의 중요성을 익혀,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 평생 가는 ‘놀
권리’
출처: 윤희일, 이제는
‘어르신 놀이터‘ 시대…’놀이형’ 노인정책으로 전환. 2020년 12월 7일.
현재 대한민국은 저출산 사회입니다. 2019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918명으로, 가임 여성 한 명의 예상 출산 자녀 수가
한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ix]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이터는 점점 더 필요해질 것이라고 예측해봅니다. 다만, 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겨냥한 놀이터가 등장하는 형태로 사회는 변화할 것입니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15.7%가 65세 이상 고령인구이며, 2025년에 이르면 20.3%까지 증가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러나
2020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2019년 13세 이상 인구 10명 중 약 4명이
현재 삶에 만족한다고 답한 것에 반해, 65세 이상은 4명
중 1명만이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합니다.[x]
고령자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작년부터 국회에서 ‘노인 놀이터’의 도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노인 놀이터는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례로, 노인이 겪는 신체 건강 약화와 우울감을 해소하고, 노인
간의 커뮤니티 기능을 합니다. 노인놀이터의 기구는 성인이 아닌, 노인의
신체에 맞게 설계되며, 경사나 단을 최소화해 고령자 접근성을 높입니다.[xi]
표면적으로 아동 놀이터와 노인 놀이터는 상반되는 개념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4번이 강조하는 ‘평생학습의
기회’라는 관점에서 보면 두 놀이터는 연속성을 가집니다. 그동안
워커 홀릭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놀 권리에 대한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노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사회 풍조에서 국민행복 세계 하위권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개인의 삶 전반에 걸쳐 각 생애 주기에 적합한
놀이 여가시설이 보장된다면 놀이권을 당연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며, 최종적으로 권리 평생학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아동, 노인 놀이터의 중요성이 조금씩 가시화되는
긍정적 변화부터 시작하여 최종적으로 아직 정책 차원에서 언급되고 있지 않은 청년, 중·장년을 위한
놀이권 및 공공 놀이시설의 마련까지 이루어져 우리 모두가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날이 얼른 오기를 소망해 봅니다.
[i] 2019 아동인권증진사업 아동권리포럼자료집(보건복지부) p.84
[ii][2019청소년] 학생 44% 하루
여가 2시간 미만…73% 사교육 받아. 매일경제, 2019년 5월
1일.
[iii]신태현, 서울 아동, 하루 1시간도
못 놀아…놀이권 조례 제정 '일보 직전‘. 2020년11월1일,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004313
[iv] 은석(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이혜림(서울연구원). <2 도시 서울의 공간불평등 검토: 어린이 놀 공간의 차이를 중심으로>.
[v] 제충만(권리옹호팀), “가난한
아이들의 놀이터는 어디로?”. 세이브더칠드런. 2017년
7월 3일.
[vi] 김세혁, 심각한 '놀이터
소음' 갈등..규제 없이 무조건 참아라?. 뉴스핌, 2018년 5월
16일.
[vii] Luke R Potwarka(University of Waterloo), Andrew
Kaczynski(University of South Carolina). Places to Play: Association of Park
Space and Facilities with Healthy Weight Status among Children. 2008. Journal
of Community Health 33(5): 344-50.
[viii] 놀이공간 조성을 통한 놀 권리 옹호사업의 형성과정에 대한 질적 연구(박현선, 좌현숙), p.12
[ix] “합계출산율 그래프/통계표“. E-나라지표.
[x] 배영신(사회통계기획과), “2020
고령자 통계“. 통계청. 2020년 9월 28일.
[xi] 김지연, 윤희진(조경학과), “국내 근린형 노인놀이터 도입과 가이드라인 연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 온라인 아카이브. 2020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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