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사회적 인프라와 지속가능성>
4기
이소정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누가 우승할 것인가 뜨겁게 논의하던 한 행정학 수업을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우리 사회의 분열에
대해 지각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것이었고, 학생들의
의견을 우선하느라 늘 당신의 의견은 뒷전이시던 교수님의 탄식에 잠시 적막했던 강의실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때부터였을까? 브렉시트가 화두가 되고, 우리가 분열의 사회에 살게 된 것이.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코로나19까지
겹쳐 서로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익숙한 사회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묻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최근
몇 년간 건축 및 도시설계 분야에서는 분열된 사회를 연결하기 위한 공간적 해법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2019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제는 ‘집합도시’로, 사람들이 도시의 특정 장소에서 집합적으로 공유하는 기억과 경험이 만드는 유대감에 대해 소개되었다. 2021년 올해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주제는 더욱 명확하다.
How will we live together?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라고 질문하며, 정치 양극화 문제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 다룰 것이라 소개하고 있다.
사회적 인프라란?
이들
비엔날레에서 소개하는 공공장소와 공동 주거 시설 등은 모두 ‘사회적 인프라’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인프라란,
사회간접자본(SOC)과 생활SOC와는 다른 개념이다.
● 사회간접자본(SOC – Social Overhead capital): 경제
활동이나 일상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간접적으로 필요한 시설(도로·항만·철도 등)을 말한다.[1]
● 생활SOC: 국민 생활 편익 증진시설(상하수도·가스·전기 등
기초인프라 + 문화·체육·보육·의료·복지·공원시설 등) 및 삶의 기본 전제가 되는 안전시설 등을 말한다. 어떤 곳이 살기
좋은 곳인가를 말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적 자본이 발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짓는
물리적 환경을 뜻한다. 도시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가 책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사회적 인프라에서
시민들은 교류하고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도서관, 학교, 놀이터, 공원, 체육
시설, 수영장 등 공공시설뿐만 아니라, 공통체 텃밭과 같은
녹지들, 교회나 시민단체 역시 사회적 인프라이다. 한편, 카페나 식당, 이발소, 서점
등 사람들이 구매 여부와 상관없이 들러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소들(third spaces)도
사회적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2]
사회적 인프라의 필요성
사회적
인프라는 분열된 사회에서 사람들 간의 연결을 도모하며, 도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95년 시카고 폭염 사태에서 지역 간 사망률을
비교 연구하며, 사회적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도시에서는 인구통계학적으로 유사한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재난에 대해 더욱 잘 대응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의 건축학 및
도시계획학 교수였던 오스카 뉴먼 역시, 1900년대 중반에 지어진 두 공동주거지 프루이트 아이고와 카
스퀘어 빌리지를 비교한 논문에서 사람들이 보다 쉽게 적극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의 유무가 두 주거지의 운명을 갈랐다고 보고 있다. (그림 1, 2 참조)[3]
한편, 사회적 인프라로 형성된 사람들의 교류와 공통된 목표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상향식 의사결정의 기본 구성 요소가
된다.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소개된 가오슝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공동 참여로 이루어
낸 도시재생이 어떻게 다시 사회적 인프라를 형성하는 선순환이 되는지 보여준다.[6]
대만의 가오슝은 우리나라의 부산처럼 대만의 제2의 도시이자 중공업이 발달한 항구도시로, 산업 구조의 변화를 겪으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이러한 가오슝의 도시재생을
끌어낸 동력은 가오슝의 옛 시가지를 보존하면서 도시 발전을 이룩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시민 공동체와 기업, 그리고
시민들이었고, 이는 대만 정부의 지역 인프라 투자 정책과 맞물려 시너지를 내었다.
[그림 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소개된 가오슝 시민의 집 2.0 프로젝트
사회적 인프라 조성을 위한 노력들
‘사회적
인프라’라는 말만 붙이지 않았을 뿐, 지역 주민들 간의 교류를
증진하기 위한 공공 공간을 조성하고자 하는 노력은 ‘도시재생’이나 ‘지역 활성화’등의 사업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낙후된 도심을 재활성화하려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도시를
더욱 안전하게 하고 주거의 질을 높이려는 개발도상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진행된 Taller Urban Lima 프로젝트가 그 예이다. 해당 프로젝트에서는
리마의 빈부격차와 위험지역의 범죄를 심화시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꺼리는 ‘공공의 문화’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공간적 해법을 제시한다. 범죄 예방을 위한 설계 방법을 고려하고 공공 공간을 조성하며, 인구밀도가
높아지며 발생하는 주거의 질 하락에 대응함과 동시에 사람들의 유대를 증대시키는 전략을 구성하고 있다.[7]
미래의 사회적 인프라와 스마트 어바니즘[8]
미래에는
사회적 인프라가 어떻게 조성될까? 서울연구원에서 2016년에
발행한 ‘서울의 미래-도전받는 공간’에서 하나의 해답을 찾아보았다. 사람들끼리 교류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물리적 공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코로나19로 확산된 비대면
행사로 우리는 이미 물리적 연결과 비물리적 연결의 공존을 경험하고 있다. 2040년 서울의 미래를 제안하는
해당 책에서는 유럽의 triple helix 지역 혁신 모델을 언급한다. 보통 어떠한 지역의 산업 혁신을 위해서는 비슷한 산업군을 모아둔 지역, 즉
클러스터를 구성하곤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클러스터는 오늘날과 같이 산업 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때에는
타 산업과의 교류를 방해하여 오히려 퇴보한 공간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유럽에서는 대학을 중심으로 네트워크
연동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triple
helix 모델이다.
Triple helix 모델이란, 사회 혁신을 위해 대학과 정부와 기업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모델이다. 대학과
정부는 서로 학습하고, 기업과 정부 간에는 혁신을 위한 제도적 차원을 모색하며, 여기에 시민사회가 참여할 경우 Quadruple Helix로 발전한다. [9]
클러스터와 다른 점은 각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구성원
간의 연결이 필요함을 짐작하게 한다. 지식, 학습, 시장과 각 참여자들을 스마트 기술을 활용하여 연결하며, 대학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물리적 연결을 도모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도시의 빅데이터 공개로 시민들이 도시정책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만큼, 이들이 생산적인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할 것이다.
공간으로 함께 살아가는 방법
분열된
사회를 연결하기 위한 치유의 공간부터, 시민들이 혁신을 만들어 내기 위한 창조의 공간까지 사회적 인프라는
그 종류의 다양성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때때로 이들이 수행하는 몇몇 기능들은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선물처럼 찾아온다. 마치 파리의 레 뒤 마고 카페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장소가 아닌
당대 파리 지성인들의 토론 장소가 된 것처럼 말이다. 30년 된 동네 미장원이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
명맥을 지켜 나가기도 하지만, 새롭게 조성된 집 앞 공원이 애견인들의 새로운 정기 모임 장소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다양한 연결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던 수요를 일깨우는 사회적 인프라 조성으로 사람들의
교류가 만들어내는 선순환을 기대한다.
[1]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정책위키. 생활SOC. 2021년 1월
5일 검색. https://www.korea.kr/special/policyCurationView.do?newsId=148855556#:~:text=%EC%83%9D%ED%99%9C%20SOC%20%3A%20'%EC%83%9D%ED%99%9C%20%EC%82%AC%ED%9A%8C%EA%B0%84%EC%A0%91,%EC%95%88%EC%A0%84%EC%8B%9C%EC%84%A4%20%EB%93%B1%EC%9D%84%20%EB%A7%90%ED%95%9C%EB%8B%A4.
[2] 에릭 클라이넨버그.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P 11 - 36
[3] 건축공간연구원(AURI). 신도시 단독주택지 공간구조 개선방안 연구. P 11 - 12
[4] 사진 출처: https://failedarchitecture.com/pruitt-igoe-is-failed-architecture-central-to-the-architectural-profession/
[5] 사진 출처: http://www.interculturalurbanism.com/?p=762
[6]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시민의 집 2.0. http://www.seoulbiennale.org/2019/exhibition.view.html?seq=172&cate=cities
[7]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집합성 구현과 도시 생활 혁신을
위한 리마의 건축 전략. http://www.seoulbiennale.org/2019/exhibition.view.html?seq=73&cate=cities
[8] 어바니즘(Urbanism)이란, 도시거주자들의
특징적 생활양식을 지칭한다. 따라서 스마트 어바니즘은, 스마트
기술을 토대로 단순 규정으로서의 도시를 넘어선 미래 생활양식을 뜻하며, 달라진 기술과 사회, 환경 및 공간에 대한 인식을 포함한다.
[9] 서울연구원. 서울의 미래-도전받는
공간. P. 265 -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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