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기술의 지속가능성 – 4기 최강현
아침 8시, 휴대폰 알람에 눈을 뜬다. 세수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날짜의 인터넷 신문을 읽는다. 아침에 일어난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당신은 전기, 상하수도, 인터넷을 사용했다. 물론 우리 각자의 아침 모습은 모두 다르겠지만, 우리는 종일 전기, 상하수도, 인터넷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전 세계 인구의 11%는 전기를 이용하지 못한다[1]. 상하수도는 30%[2],
인터넷은 41.2%[3]에 달하는 인구가 이러한 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적정 기술은 이런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고민에서 탄생하였다. 첨단 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의 문제 해결을 위한 현지 친화적 기술적 접근이 바로 적정 기술이다.
적정 기술과 지속가능성
적정 기술이란 선진국 위주의 기술 개발과 사용에서 벗어나 현지의 문화와 사정을 고려한 기술을 말한다. 즉, 각 지역의 필요와 직접 연결되어 지역 인력과 자원을 사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개발되는 기술이기 때문에 복잡하지 않고 저렴하며 생산과 유지보수에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 않아야 한다[4]. 그에 더하여 사용 방법이 간단하여 특정한 지식 없이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적정 기술의 또 다른 개발 목표는 지역사회의 양적, 질적인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정 기술이 현지에 적용될 때, 지역주민이 스스로 제작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협동을 이끌어 내어 지역사회를 통합시킨다. 또한, 적정 기술 그 자체가 지역사회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제 3세계의 많은 지역공동체는 상당한 양의 인력과 시간을 단순히 생존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용하므로, 적정 기술을 사용하여 의식주나 건강, 교육과 같은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킨다면 지역사회가 미래와 발전을 위하여 투자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적정 기술은 UN
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와 연결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적정 기술은 지역사회의 농업, 공업 생산량 부족을 개선하며 질병을 예방하고 교육을 제공해 깨끗한 물과 신재생 에너지의 사용을 증가시킨다. 또한, 적정 기술은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추구하므로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 문제해결과 관련이 있다.
적정 기술을 표방하는 기술은 실제로 지속 가능한가?
앞 문단에서 적정 기술이라는 개념의 지속 가능한 특성에 대해 다루었다면, 이 문단에서는 현실성과 수익성의 측면에서 기술 그 자체의 생존 가능성을 사례를 통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번째 사례는 플레이 펌프(Play Pump) 프로젝트이다. 플레이 펌프는 어린아이들이 놀이기구를 사용하는 힘을 이용하여 우물에서 물을 끌어올린다는 새로운 방식의 펌프였다. 아이들은 즐겁게 놀 수 있고, 지역 사회는 물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일거양득을 노린 플레이 펌프는 전 세계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으며 미국 정부로부터 천만 달러 규모의 PPP
(Public-Private Partnership)을 유치[5]하며 순조롭게 시작하였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플레이 펌프는 실패한 적정 기술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놀이기구에 펌프를 연결하면 놀이기구는 돌리기 어려워질 뿐 아니라 더욱 빨리 멈추게 된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이 즐겁게 놀게 하자는 목표에서 설계부터 어긋나 있었다. 그에 더하여 펌프 시스템은 펌프 구조와 물탱크를 포함한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으므로 지역사회 차원의 유지보수가 어려웠다. 더욱이 기존 손 펌프와 비교하면 효율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펌프의 목적으로도 사용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대상 지역사회의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발명된 기술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
Figure 2 플레이펌프의 개발 목표
(http://www.playpumps.co.za)
두 번째 사례는 OLPC 프로젝트이다. OLPC는 “One
Laptop Per Child” 를 신조로 하여 교육을 위해 아이들에게 100달러 미만의 노트북을 보급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당시 개발과 보급을 위하여 AMD, 이베이, 구글을 비롯한 굴지의 IT 대기업이 이 프로젝트에 투자하였고, 실제로 노트북 개발까지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기술 수준으로 100달러 미만의 저가형 노트북을 개발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으므로 개발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비용이 상승하여, 완성된 노트북은 기존 목표 가격의 두 배에 달하는 190달러로 출시되었다. 그 결과, OLPC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던 국가와 기관들의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또한, 전력과 인터넷과 같은 기반 인프라 시설이 현지에 존재하지 않으면 큰 이점을 갖지 못하였고, 교육에서의 노트북 활용의 이점에 대해서 현지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하여 애초 계획만큼 노트북을 보급하지 못 했다. 이 사례가 말해주듯이, 적정 기술의 실제 지속성을 위해서는 현지의 상황을 고려하는 것에 더하여 실제로 지속 가능한 경제적 모델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Figure 3 One Laptop Per Child 프로젝트
적정 기술이 실제로 지속 가능 하려면.
앞서 살펴본 사례를 통하여 생각해 볼 때, 적정 기술이 실제로 지속 가능 하려면 지역사회와 잘 융합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적정 기술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저렴하고 유지보수가 쉬워야 한다.
2. 지역사회와 개인의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3. 적절한 경제적 모델을 갖추어야 한다.
이 문단에서는 이 세 가지 특징을 고려한 적정 기술을 다루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는 PaperFuge이다. PaperFuge는 실팽이의 원리를 이용한 원심분리기이다. 혈액 속 말라리아 세균을 검사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원심분리기가 필요하므로 말라리아로 큰 피해를 겪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사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정 기술로서 PaperFuge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나무, 실, 종이를 사용하여 20센트라는 낮은 가격을 실현하였기 때문에 아프리카 지역 공동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원심분리기로서 기능한다. 낮은 가격과 구하기 쉬운 재료는 적정 기술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큰 장점이다.
Figure 4 실팽이의 원리를 이용한 PaperFuge
(https://www.treehugger.com/low-cost-paperfuge-may-one-day-save-countless-lives-4866999)
두 번째 사례는 Q-Drum이다. Q-Drum은 아래 사진처럼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 모양의 물통으로서, 적은 힘으로 50L가량의 물을 운반할 수 있게 한다. 기존에는 단순히 식수와 생활용수를 얻기 위하여 식수원까지 5회 이상 왕복해야 하지만 Q-Drum을 사용하면 이를 단 한 번의 왕복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시간적 여유를 가져온다. Q-Drum은 단순히 물을 운반하는 데 드는 노동력과 소요시간을 줄이는 것 그 이상의 여파를 가져올 수 있다. 하루 중 생존을 위한 시간이 줄어들수록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남은 시간을 개인의 일이나 학교 공부 등에 투자할 수 있게 하여 개인과 지역 사회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 이렇게 교육과 지역사회 발전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기술적 혁신도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해 걸음을 내딛게 할 수 있다.
Figure 5 Q-Drum은 적은 힘으로 많은 물을 운반할 수 있게 한다.
(http://www.impacthound.com/q-drum-rollable-water-container/)
세 번째 사례는 방글라데시의 비영리기업 “그라민 샥티”(Grameen-Shakti)이다. 그라민 샥티는 방글라데시의 농촌을 대상으로 가정용 태양광 발전 설비를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태양광 설비와 같은 기술 집약적 산업은 많은 자본과 유지보수가 어렵다는 점에서 적정 기술의 일반적 정의에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라민 샥티는 이를 적절한 경제적 모델을 활용하여 해결하였다. 먼저 태양광 설비를 구매하기 어려운 농촌 가정에 소액 금융 사업을 함께 제공하여 태양광 설비를 도입하는 문턱을 낮추었다. 또한, 각 지역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태양광 설비 유지 보수 및 관리 방법을 교육하여 “그라민 레이디”라고 불리는 관리 기술자의 형태로 고용하였다. 이를 통하여 유지보수가 어렵다는 점을 해결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의 고용을 증가시켜 농가의 기본 소득을 증가시켰다. 이처럼 적정 기술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선순환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경제적 모델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적정 기술
적정 기술이라는 개념과 용어는 제 3세계를 위한 기술적 해법을 찾으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20세기의 적정 기술 개념은 선진국의 첨단 기술 개념과 대비되는 형태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21세기의 적정 기술은 지속 가능한 개발의 형태로 제 3세계와 선진국을 나누지 않고 사용되며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 3세계를 위하여 탄생한 적정 기술은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는 “좋은 디자인”의 형태로 다시 태어났다. 사람과 환경을 생각하는 기술 디자인이 사람이 사는 곳 어디든 널리 사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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