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업과 지속가능성
영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는 언제나 강력하다. 과거에
불합리성을 고발하기 위해 혹은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고통을 호소하기 위해 수많은 글과 책이 쓰였던 것처럼, 영상은
글에서 더 나아가 의도된 배열의 이미지와 텍스트로 시각적 설득을 더해 사람들에게 사회 변혁에 대한 의지를 전달한다. 영상은 단순히 그 기능의 효율성을 넘어서 메시지를 확실히 전파할 수 있는 힘 또한 가지고 있다. 우리 생활에 가까운 대표적인 영상 매체의 예시가 영화이다. 작년
한 해 한국 영화시장 전체규모는 6조 1772억원, 관객수는 2억 2668명으로
문화생활에서 어느 통계보다 압도적인 수치를 자랑한다. 비단 한국 시장뿐만 아니라 영화가 더 먼저 발전한
미국의 경우, 매해 평균적으로 4000만명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동시 시청한다. 모든 영화가 계몽의 형태를 띄는 것은 아니지만 디카프리오의 환경에 대한 수상소감 한마디를
TED 강연 10개를 합친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사실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UN이 제시한 MDGs, 나아가 2030년을
목표로 더 세부적이고 치밀하게 계획된 SDGs까지, 우리는
이제 전지구적으로 지속가능발전의 필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영화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또한
더 이상 선지자적 면모가 아닐 정도로 많이 차용되고 있다. 엘 고어 부통령의 <불편한 진실>처럼 노골적으로 문제점을 짚는 영상도 있는가
하면 <WALL-e>와 같은 애니메이션의 형태로 우리에게 스며드는 영화도 있다. 한국에서 또한 2004년부터 시작된 서울환경영화제로 환경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고 미래를 위한 대안과 실천을 논의하는 공간을 영화라는 지평에서 마련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영화
산업은 어떨까? 지속가능성에 대한 무언가를 담지는 않더라도 영상의 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작품으로는
깨어 있는 양 떠들어대지만 한편으로 영화 산업도 산업이기에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점들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더욱이 프로젝트성 단위로 진행되는 영화 촬영 현장에 ISO 14001과
같은 환경 표준 규격을 적용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일회성으로 사용되는 세트에 들어가는 자원, 영화 진행의 신속함을 위해 소비되는 플라스틱 용기, 동원되는 수많은
촬영장비 등. 실례로 런던 한 도시에서만 영화 산업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20,000명의 주민으로 이루어진 도시 전체가 연간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다. 그리고 다행히도 단발성 영화제작이 훌륭한 영상물인 동시에 쓰레기 집합소가 되지 않도록 영화계도 문제점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경우 2006년부터 별개의 자치기관인 Reel
Green을 통해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회사와 개인에게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영화제작을 위해 정보와 방법론들을 제공하고 있다. SONY Pictures와 같은 큰 스튜디오의 경우 최근 <Amazing
Spider-Man 2> 제작 당시 Earth Angel이라는 별개의 단체와 계약해
52%의 waste diversion rate을 이루고 50톤에 가까운 제작 자원(나무, 철, 유리)등을 재사용 가능한 형태로 효과적으로 관리했다. 유럽의 경우에도 British Academy of Film and
Television Arts (BAFTA)가 12개의 메이저 방송사와 영화사들 간의 컨소시엄을
정립해 자체적으로 이산화탄소 측정기를 보유하고 지속가능성 인증 규준을 마련하였다.
영화 산업에 적용되는
지속가능성은 ‘환경을 위한 좋은 마음’과 같은 무형의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비교적 후발주자로 제작 환경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려하게 된 영화계는 더욱 가격 효율적이고
최적화된 자원들을 임상실험 없이 선택할 수 있다. 또한 Green
Screen Toronto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리허설에 필요한 대본 종이들을 재사용 하는 것만으로도 $17,500의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한된 시간과 익숙하지 않은 제작 방법이라는 말을 영화계에서는 더 이상 변명으로 삼으면 안 된다. 영화산업이 예술의 영역에서 범지구적 변화를 피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충분히 방법론들을 마련해 놓았다. 영화가 보여주는 메시지가 정작 영화계의 태도와는 모순된다는 점에 손가락질 받지 않으려면 그동안 관습과도 같은
게으른 제작 환경에서 탈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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